조경사(造景史)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저]

오경권 2018. 11. 7. 14:32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1장. 왜 어떤거리는 걷고 싶은가 

강남 테헤란로는 걷고 싶은 거리는 아니다. 반면 명동은 걷고싶은 거리다. 

어떤 차이가 걷고싶은 거리를 만드는 것일까? 유럽의 도시들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오래전 부터 생성된 것으로, 도시 내 도로망이 사람 혹은 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생겨났다. 느린 이동수단 때문에 도시의 도로망은 짧은 단위로 나누어졌다.

 반면 미국은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다. 자동차로 인해 시간거리가 짧아지고 교차로는 크게 구획된다.

 미국의 도시에 비해 유럽의 도시가 자주 교차로와 마주치고, 그 만큼 보행자는 다행한 경험과 선택을 할 수 있다.

다양한 경우가 있다는 말은 보행자가 다른 날 다시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새로운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명동의 경우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도시 계획가에 의해 건설된 지역으로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가로변으로 접한면이 좁고 세로로 긴 형태다.

이 외에도 인접한 건축물과 사이에 틈이 없어 단위면적당 건물 개수가 많은 것이 명동의 특징이다. 

단위거리당 열다섯개의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걷고 싶은 거리는 얼마나 자주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느냐의 물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30평짜리 주택이 100평짜리 주상복합 보다 넓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당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마당의 이벤트는 다양하다. 고추를 말리고 바베큐를 굽고 비가오고 햇살이 비췬다.

 많은 이벤트는 심리적으로 기억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억이 다양한 사람은 삶이 풍요롭다.

 이벤트가 많은 곳에 사람은 모이고 성공적인 거리가 된다.




3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팬옵티콘 구성은 단순하다. 

원형 평면의 중심에 감시탑을 설치 해 놓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주변으로 빙 둘러서 죄수들의 방이 배치되어 있다.
 감시탑 내부는 어둡고 죄수들의 방은 밝아 간수는 죄수를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다. 처음에는 간수가 죄수를 감시하면서 잘못했을 때 몇 번의 처벌을 가한다. 그렇게 수 차례 처벌이 있게 되면 죄수는 간수가 자리에 없을 때 조차도 어두운 탑 속에 간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기에 언제 처벌 받을지 모르는 공포감에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는 주변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이유만은 아니다.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구조를  보여주는 공간 형태다.
높은 층에 사는 사람은 마치 간수가 감시탑에 숨어서 바라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권력을 갖는다.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고 본인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공간이 주는 권력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건축물로 북경의 자금성이 있다. 자금성의 커다란 문을 통과할 때 좌우로 창을 든 문지기가 있다. 이를 통과해서 들어가면 좌우대칭의 커다란 마당이 나온다. 개천 같은 곳을 다리를 통해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린다. 삼엄한 경비를 지나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이 나오고 다시 문이 나온다. 이런 여러 차례의 담장을 통해 안에 들어가면 커다란 광장에 신하들이 도열해 있고 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황제가 있다. 여러번 문을 통과하면서 더 중요한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 황제를 맞이하게 되면 대단한 권력가라고 느낄 수 밖에 없다.

: 회장님 방엔 비서실이 있고 비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회사에서 부장님 자리는 창가 앞에 있다. 부장님 자리에선 직원들을 볼 수 있지만, 직원들은 부장님을 볼 수 없다. 모텔에는 창문이 없다. 하지만 호텔은 고급호텔 일수록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 있다. 바라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서 권력의 차이가 생긴다. 공간이, 건축이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4장.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뉴욕의 할렘가는 흑인들만 사는 범죄율이 높은 곳이다. 

 예전 할렘은 이렇게 살벌한 슬럼가는 아니었다. 20세기 초만해도 돈 많은 유태인이 사는 좋은 동네였다. 냉장고가 발명되면서 일주일에 한번만 장을 보면 됐다. 도시는 고밀도 도시에서 널리 퍼진 주거지와 고속도로 교차로 주변의 쇼핑몰로 대체됐다.

 고속도로, 자동차, 냉장고는 당시 미국 사람들의 삶을 교외에 위치한 주택에서의 삶으로 개편시켰다. 유태인들은 할렘을 떠나 뉴저지로 가고 그 자리를 도시 빈민이 차지하게 됐다.

뉴욕시는 할렘의 버려진 건물을 한 채당 1달러에 100년을 임대해주는 조건으로 개발업자들에게 장기임대를 주었다.

 거의 공짜로 임대를 하게 된 회사는 먼저 하나의 거리 전체를 한 번에 개발한다. 거리가 전체 개발되지 않고 한 두채만 개발될 경우 깨진 유리창 법칙 때문에 사람들이 이사를 오지 않는다. 건물의 외관을 개선하고 흑인 출신 변호사들이나 의사같은 전문 직종인들에게 특혜 분양을 준다. 거리의 각 코너에 스타벅스와 반디앤드노블 책방을 입점시키면서 거리를 개선해나갔다.

: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아무는것 처럼 도시도 성장하고 전성기를 보낸 후 쇠퇴한다.

 시대가 변하면 어느 도시나 없던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도시가 생겨날 수 있다.




7장.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절에는 대형 집회공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 집회가 있다해도 마당 같은 외부 공간에서 모인다. 따라서 대형 건물이 없다.

절의 대부분의 공간은 외부 공간으로 구성되어 외부 사람이 들어와도 그저 정원 마당에 들어가는 느낌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반면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예배중심으로 운영된다. 같은 시간에 사람들이 몰린다.

 커다란 예배 공간이 있는 대형 건축물이 필요하다.

같은 브랜드의 의류 매장이라도 백화점에 위치한 매장이 독립된 상점보다 매상이 높다.

 문이 달리지 않은 백화점 매장은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독립된 상점보다 손님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도를 중시하는 교회이지만 건축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 더 폐쇄적인 것이다.




10장. 죽은 아파트의 사회
역사학자의 연구를 살펴보면 과거 이 문명이 살아남는데는 식량확보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였다.

 기근을 못 넘기면 그 종족은 모두 죽어 없어지게 된다. 불편해도 멀리 떨어진 여러 장소에 분산해서 농사를 했다.

 피해가 와도 다른 지역의 작물로 살아남기 위한 위험 대처 방식이 있었다. 그 외에 식량 저장 기술로 가축을 키웠다.

 소비 후 남는 감자나 고구마를 돼지에게 먹이고 수년 후 기근에 돼지를 도살해서 식량으로 전용하는 것이다.

과거에 식량은 곧 생존이었다. 현대 사회는 돈이 그 역할을 한다.

 돼지가 기근을 넘기는 방식이 되 듯 현대인들이 돈이 부족한 시기를 넘기는 방식은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은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서 돼지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 지난 50년간 미국 중산층 집의 크기는 가족 구성원의 수는 줄었지만 두배 가까이 커졌다. 커져버린 집의 공간을 물건으로 채운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면 세상의 매체에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해야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넣기 위해서 더 큰집을 구해야한다.

 모아이섬은 큰 거석으로 부족의 힘을 드러냈다. 더 큰 석상을 만드는 데  모든 나무를 사용했다. 나무가 없어 배를 못만들고 토양은 비에 휩쓸려 내려갔다. 결국 모아이섬은 짧게 번성하다 사라졌다.

 돼지에서 아파트로 형태만 바꼈을 뿐 생존의 본질은 같다.

 사람답게 먹고 살고 대화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지 가구를 담기 위한 큰 집을 사는게 아니다. 우리는 본질을 잊은 채 모아이섬의 원주민 처럼 살고 있진 않은지 돌아봐야한다.


14장. 동과 서 : 서로 다른 생각의 기원


밥상을 살펴보면 동아시아는 벼를, 유럽은 밀을 주요 식량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강수량에 근거한다. 벼는 강수량 1,000밀리미터에서, 밀은 강수량 800밀리미터에서 재배된다. 벼는 비가 많이오는 동아시아에서, 밀은 강수량이 적고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된다. 비가 적게 내리는 유럽은 벽 중심의 건축을 하기 적당한 딱딱한 땅을 갖고 있다. 반면 집중호우가 있는 동아시아는 땅이 무르기에 주춧돌을 놓는 스폿 기초를 사용해서 가벼운 나무 기둥을 써야했다. 나무 기둥은 주춧돌 위에 올려서 나무 기둥뿌리가 빗물에 젖어 썩는 것을 방지했다. 흙으로 만든 벽이 비에 씻겨 내려가지 못하게 처마를 길게 뽑은 것도 큰 특징이다.


건축의 대부분은 자연환경과 기술력, 건축 재료 등에 의해서 결정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무역의 발달로 먼 곳에서 생산되는 건축 자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고층 건물의 경우 전 세계가 철골 아니면 콘크리트로 건물을 짓는다. 결국엔 모든 것이 비슷해진다. 자연 속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건강한 상태계의 붕괴를 초래한다. 한 가지로 통일된 체제는 변화에 실패했을 경우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다시 주춧돌로 바닥을 지탱하고 나무로 된 목조 건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 전통성이란 무엇일까? 과거의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의 환경과 기술력, 건축 재료. 그리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 집중한다면 그것이 바로 전통적인 것이고 우리만의 고유성이 되는 것이다.




: 시대는 변화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나고 도시는 성장하기도 쇠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금 되풀이 된다. 식량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던 시절에는 남은 식재료를 돼지에게 먹이고 기근 때에 돼지를 도살하여 식량을 조달했다. 지금은 어떤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됐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 생존에 대한 갈망으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행위를 되풀이 한다. 경쟁이 활발했던 시대엔 더 큰 고인돌, 거석으로 우리 부족의 강함을 드러냈다. 시대가 지나선 더 높은 빌딩, 탑으로 힘을 드러낸다. 63빌딩이 생기고, 롯데타워가 생기고 이어 현대 비지니스센터가 올라가고있다.

인간의 역사는 계속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다. 내 삶만 봐도 문제가 없던 시기가 없었다. 10대는 성적, 20대는 취직. 30대는 연애 결혼의 문제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해결하면서 나 다움을 발견하고 성장했다. 마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서 브로드웨이의 거리, 센트럴파크가 생겨났다.

문제는 나쁜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자기의 문제를 타인을 통해 너무 쉽게 해결 하는 자세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남의 것을 따라하는 건축양식, 문화양식이다. 영어공부는 필수다. 대학은 나와야한다. 결혼은 화려하게. 신혼여행은 해외로. 아침에 눈을 뜨면 같은 미디어를 통해 같은 정보를 얻고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같은 것을 소비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어떻게 사는 삶이 옳은 삶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문제를 알고, 미디어에서 주는 해결책을 수용한다.

사회는 대학졸업자를 다 수용할 수 없지만, 너나할 거 없이 대학에 진학한다. 막연히 더 큰집, 더 좋은 차를 위해 돈을 모으고 비교하며 경쟁한다. 본질적으론 더 큰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나르는 원시인과 다를게 없다. 책에서 우리가 지켜야한다 말하는 전통성, 다양성은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나 다움은 무엇인가? 행복의 본질은 무엇인가?